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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

지금 여기 나로 살기

거창한듯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 별 이야기는 아니다. 


매년 이러 저러한 이유로 이사를 다니고 있는 실정인데,

사실 체력적인 면도 있지만 여러모로 훨씬 꼼꼼한 남편은, 이사를 할때마다 고생을 너무 해서 이제 진저리를 친다.


사실 나도 할때 마다 (내 딴엔) 너어어어무 힘들지만,

좋은 점이 있다면

이사를 하면서 짐정리를 한다는 것과

익숙한 짐들로 새로운 분위기에서 살수 있다는 것. 


이사를 안해도, 

사실 부지런하기만 하다면야

열심히 꾸미고 가꾸고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인디 허허





미국에 나와 살게 되면서

처음으로 작지만 내 공간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 후로 몇 해가 지나서야 공간을 꾸민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공간을 내가 있고 싶은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이

나에게 지금을 살기 위해 중요한 요소라는 것도. 





한국에 살때 우리 가족은 전세인생이었다. 

장남인 우리오빠가 31살 내가 29살이 될때까지 전세살이를 했으니, 

(중간에 잠시 경기도권에 살때 빼고 서울에 살때는 쭉 계속)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청소하는 우리엄마지만,

집을 꾸미는 것에는 좀처럼 관심이 없으셨다. 그저 바닥과 부엌을 쓸고 닦고 하실뿐. 

한번은 엄마께 왜 우리는 집을 안꾸미냐고 물어봤더니

엄마는 내집도 아닌데 뭣하러 

하시더라.


이제 작지만 아빠 손으로 직접 지은 우리집을 갖게된 지금

처음으로 엄마는 이것 저것 직접 사서 꾸미기 시작하셨다.  

물론 30년 넘게 안해본 집꾸미기라 엄마의 취향이란 것은 사실 중구난방.

여전히 쓸고 닦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신다.


30년 동안 내 소유가 아니란 이유로 

집의 기능적인 부분 - 자고, 먹고, 씻고, 눕고(?), 저장하고 - 만 누릴뿐이셨지

공간 자체를 즐긴다는 생각 자체가 없으셨던 것 같다. 


그게 어린 맘에도 썩 좋진 않았지만,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고 나 역시 그래왔다. 

대학 때 잠깐 인턴하던 곳에서 같이 인턴하던 친구들이 사무실 책상에 

자꾸 이것 저것 꾸미는 것을 보고 이해하지 못했던 나였다. 

어차피 떠날걸 왜?





그런데 내가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지금 내가 있는 공간과 이 시간이 진짜 내것이더라 

일년 뒤 오년 뒤 십년 뒤 나~~중에

더 좋은 곳, 더 나은 곳에 살거라고 (그렇다는 보장도 없으면서) 

지금의 공간과 시간을 마치 남의 것처럼 취급하는 동안 

나는 항상 어딘가에 부유하는 사람 같았다. 내 공간은 지금 여기에 존재 하지 않았던 거다. 


20대에 막 들어섰을 땐, 그래도 그런 공간과 시간에 대한 로망은 또 있어가지고 열심히도 쏘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찾고,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까페로, 번화가로, 공원으로, 레스토랑으로,

유명하다는 곳은 다 찾아다니며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찾아다녔다. 

이 때의 경험 덕에 그나마 엄마와는 달리 나는 나의 취향이라는 것을 무심결에 만들어갔겠지


그리고 미국에 처음 왔을때,

(여전히 못하지만) 운전도 못하고 차도 없는 나로서는 

그런 공간을 즐기지 못하는게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괴로웠다. 

그게 가장 큰 괴로움의 이유였던 것 같다. 

좋으나 싫으나 내가 갈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 한정된 장소에서 큰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이 때도 내 공간을 꾸민다는 개념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그나마 번화된 도시에서 살고 있기에, 

그때완 달리 가끔은 분위기 전환이라는 곳을 할만한 공간을 찾을 수 있다. 함께 할 남편도 생겼고.

그래도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고, 답답함이 찾아왔다. 

그게 또 너무 너무 너무 괴로워서 어떻게든 이곳을 좋아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게 블로그였다.


아니 정확히는 끝도 없이 인터넷을 방랑하다 만난 블로거들이 내눈엔 즐거워보이더라. 

그들의 속사정이야 모르겠지만 본인들의 공간과 시간안에서 만든 컨텐츠를 공유하던 사람들.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기 시작하고 어쩌면 나도 지금 여기 내가 사는 이 시간과 이 공간을 공유하다보면

더 관심있게 내 일상을 보게 되지 않을까. 


블로그는 천성인 게으름 덕에 그닥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동기는 나름 만족시켰던 것 같다. 집앞을 나가도 블로그에 올릴 생각으로 사진을 찍고 

집앞 이외에 다른 곳도 더 다녀봐야겠다는 마음도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있는 집도 더 예쁘게 만들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답답하던 시간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더 중요한건 

오늘과 지금과 여기를 미루면서 살아가던 나를 바꾸자 마음 먹는 계기가 됬다.


블로그 뿐만 아니라 사실 같은 과 친구들과 운동을 시작하고

그들의 주체적이고 활동적인 삶을 가까이 지켜보며 달라진 부분도 크다. 





여튼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요즘 인테리어가 각광받는 이유가 그런게 아닐까 싶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요즘의 사람들에게 이제 그저 먹고사는 것 (상대적으로 덜 빈곤한 것도 있지만, 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시대에 살기에 더 그 의미가 쇠퇴한 걸수도) 아니라 삶을 즐기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거라고 할수 있을까

각자 다른 이유를 가지겠지만

나에게 확실한 건 집이나 공간을 꾸민다는 것은

지금 내가 있는 이곳과 그리고 오늘을 더 적극적으로 좋아하겠다는 마음을 담는 것이다. 

이 시간과 이 공간을 벗어나기만을 바라며 사는 것은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여담이지만,

최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변화중 하나는 아주 조금이라도 운동의 재미를 알게 된 것인데,

이것 역시 지금 내가 말하는 지금 이곳에서 나라는 사람으로 오늘을 충만하게 사는 것중에 하나일 수 있다. 


예전에 내게 운동은 그저 해야하는 것이라서 하는 것이었다면

요즘은 내몸과 이야기를 하는 기분으로 운동을 한다. 몸의 반응에 예민해졌달까. (이건 나이들어서인지도 ㅋㅋ)

오늘은 어디가 더 많이 당기고 어디가 단단해졌고, 그래서 어떤 동작이 더 쉬워졌고 혹은 달리기 기록이 나아졌고 등등

잘 들어주지 않던 내 몸의 반응을 들어주다 보니 조금 더 지금의 나에게 충실한 기분이 든다


건강한 식습관이 유행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건강한 음식이 내몸의 구성 성분이 되고 그에 따른 몸의 변화를 예민하게 살피게 되니 말이다. 


단순히 의무에 의해서 일년 뒤 오년 뒤 십년 뒤 내 몸을 위한 투자로 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하면 난 오래 못간다. 저질체력에 끈기 따위 없어서.





거창한듯 뭔가 깨달은듯 이야기 했지만

사실 이렇게 남기는 이유는 

내 스스로 아직은 불안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장만 하더라도 논문에의 압박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운동때문에 피곤해서 더 못하는거 아닐까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기 시작한다.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 만지는 시간을 줄이면 될텐데.

 

집정리도 마찬가지. 그냥 하면 될걸. 

괜히 논문이 급하다며 못본채 하고는 책상에서 인터넷으론 다른짓.


아직까지는 온전히 나와 내 시공간을 보살피는 일이 몸에 붙지 않아서

언제든 쉽게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뭔가 대단한척 하며 말이다. 

부끄러워서라도 지금 여기 나로 사는 일상을 지켜나가길 바라며. 


그리고 

지금과 오늘이라는 일상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하루 하루에

존경심 가득 담은 눈빛을 보내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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